작년 이맘때쯤 업무상 영문 기술 매뉴얼을 좀 더 수월하게 읽고 싶다는 생각에 외국어 공부 앱을 몇 개 설치했었습니다. 품질관리 쪽은 해외 규격 문서를 자주 접하다 보니, 번역기에만 의존하기엔 미묘한 뉘앙스 차이가 걸리더군요. 결국 1년 가까이 세 개 앱을 병행하면서 느낀 점을 공유해 봅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Duolingo (무료 위주로 사용)
처음에 가장 유명하다길래 시작했습니다. 무료 버전 기준으로 광고가 꽤 자주 나오고, 하트 시스템 때문에 오답을 내면 학습을 더 이어가기 어려운 구조였습니다. 저는 주로 출퇴근 지하철에서 했는데, 통신 상태가 불안정하면 오답 처리 후 하트 복구용 광고 시청조차 안 되더군요. 한 번은 세 정거장 남았을 때 실수 두 번 했더니 바로 ‘오늘 학습 종료’ 상태가 되어서 허탈했습니다. 게임처럼 짧게 반복하는 건 좋은데, 이건 공부라기보다 퀴즈 맞히기에 가까웠습니다. 문장 구조 설명이 부실해서 ‘왜 이 단어가 여기 오는지’는 결국 따로 검색해야 했어요. 다만 발음 연습 모드는 초반 입을 푸는 용도로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 Memrise (무료와 유료 혼합)
이쪽은 현지인이 짧은 영상으로 발음을 들려주는 점이 특히 도움이 됐습니다. 교재 영어가 아니라 실제로 말할 때 호흡 어디서 끊는지, 입 모양은 어떤지 보면서 따라 하니까 듣기 실력이 조금 올라가더군요. 무료로도 꽤 오래 쓸 수 있긴 한데, 오프라인 학습이나 어려운 단어만 골라 복습하는 기능은 유료입니다. 저는 한 달 무료 체험 끝나고 바로 유료 결제로 넘어갔고, 한 달에 1만 원대 초반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앱의 단점은 학습 코스가 사용자 제작이다 보니 퀄리티가 제각각이라는 점입니다. 독일어 코스는 알찼는데, 제가 필요했던 기술 문서 영어 쪽은 실무와 동떨어진 표현이 많더군요. 가령 공장에서 ‘토크 렌치로 규정 값까지 조이시오’ 같은 문장은 좀처럼 안 나옵니다. 결국 범용 회화 위주라는 인상이었습니다.
- Anki (무료. PC 버전 위주로 유료 iOS는 따로 구매)
기술 용어 암기 때문에 반쯤 체념하고 시작한 플래시카드 앱인데, 의외로 여기에 가장 많은 시간을 쏟았습니다. 구조는 단순합니다. 카드 앞뒤에 질문과 답, 필요한 경우 이미지나 음성까지 직접 만드는 방식입니다. 저는 품질 매뉴얼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표현(예: allowable tolerance, non-conformance report, torque spec 등)을 발췌해서 카드로 만들었습니다. 듣기나 회화는 거의 포기하고 읽기 특화로만 썼습니다. 초반에는 카드 만드는 시간이 공부 시간보다 길어서 이게 맞나 싶었는데, 두 달쯤 지나자 문서 읽는 속도가 미세하게 빨라지는 걸 체감했습니다. 특히 과거에 사전 검색했던 표현이 카드 복습을 통해 거의 반사적으로 눈에 들어오니까 업무 중에 멈추는 횟수가 줄었습니다. 인터페이스는 투박하기 짝이 없습니다. 통계 그래프도 딱딱하고, 초보자가 설정 만지다가 카드 스케줄 꼬이면 복구하는 데 시간이 걸립니다. 실제로 저도 실수로 학습 간격 설정을 초기화해서 3주 치 복습 기록을 날린 적이 있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정리하자면
게임처럼 가볍게 시작하고 싶다면 Duolingo도 나쁘지 않습니다만, 저는 광고와 하트 제한 때문에 중간에 여러 번 그만둘 뻔했습니다. 듣기와 발음을 현지인 영상으로 익히고 싶다면 Memrise가 도움이 되는데, 업무용 어휘는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Anki는 정말로 필요한 것만 반복 학습하기엔 좋았으나, 직접 카드를 만들고 설정을 관리해야 해서 진입 장벽이 낮지 않았습니다.
유료든 무료든, 결국 본인이 필요한 외국어 범위가 뚜렷할수록 만족도가 갈렸다고 생각합니다. 저처럼 현장 매뉴얼 위주로 읽는 게 목표라면, 범용 회화 앱은 차라리 초반에 거르는 게 낫겠다 싶었습니다. 시간은 한정돼 있으니까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