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 15년 차 먹다 보니 주변에서 방 구한다는 후배들한테 얘기해줄 때마다 느끼는 건데, 결국 다들 비슷한 데서 삽질을 하더라고요. 저도 처음 자취방 구할 때 인터넷에 떠도는 체크리스트만 믿고 갔다가 크게 데인 케이스라, 제 경험 위주로 좀 써볼게요.
일단 가장 중요한 건, 방 보러 갈 때 무조건 평일 낮 시간에 한 번은 가봐야 한다는 거. 이거 진짜 몰랐거든요. 저는 처음에 토요일 오후에만 집 보고 계약했는데, 막상 입주하고 보니 평일 낮에 앞 건물 공사 소리가 장난 아니더라고요. 알고 보니 그 동네가 재개발 직전이었던 거죠. 부동산 중개인한테 물어봤어도 아마 '곧 끝난다'고 했겠지만, 직접 듣고 판단했으면 달랐을 거예요. 그 집 2년 채우느라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었어요.
두 번째는 보일러랑 온수 확인. 여름에 집 구하러 다니면 이거 놓치기 쉬운데, 겨울 되면 지옥을 맛봅니다. 제가 두 번째로 살았던 집은 중간 방이었는데 보일러 돌렸을 때 방은 따뜻한데 화장실 바닥이 얼음장이었어요. 배관이 어떻게 된 건지 화장실 쪽만 난방이 안 되더라고요. 샤워할 때 진짜 고역이었죠. 계약 전에 중개인한테 "보일러 좀 켜봐도 될까요?" 하고 20분 정도 돌려보는 걸 추천해요. 괜찮은 중개인은 다 이해해줘요.
수압도 한 번쯤 확인해보는 게 좋아요. 저처럼 2층 이하로 살 거면 크게 상관없는데, 옛날 빌라 4층짜리 꼭대기 살 때는 샤워기 물줄기가 너무 약해서 머리 감는 데만 한세월 걸렸어요. 샤워기 헤드를 고압형으로 바꿔도 큰 차이 없더라고요. 애초에 건물 전체 물탱크 압력 문제라서. 이건 부동산에서 "수압 좀 약해요" 하고 말 안 해주니까 무조건 수도 틀어보고 확인하세요.
그리고 제가 제일 강조하는 건 '빌트인 가전'이 있는 집은 조심해야 한다는 거. 보기엔 깔끔하고 좋아 보이는데, 고장 나면 답이 없어요. 제 친구는 빌트인 냉장고 있는 집 들어갔다가 1년 만에 고장 났는데, 주인이 "니가 잘못 써서 그렇다"면서 수리비 반반 하자고 했다더라고요. 보증 기간도 애매하고, 철거하고 새로 사자니 공간이 맞는 일반 냉장고 구하는 것도 일이고... 결국 법적으로는 임대인이 수리해주는 게 맞는데 현실은 진흙탕 싸움이 되는 경우가 많으니까, 차라리 빈 공간에 내 가전 넣는 게 속 편하더라고요.
채광은 다들 중요하게 보니까 패스하고, 오히려 환기를 더 신경 쓰는 게 좋아요. 제가 살았던 집 중에 창문은 큰데 바로 앞에 다른 건물 벽이 막혀 있어서 바람이 안 통하는 곳이 있었거든요. 여름에 진짜 찜통이고 습기는 안 빠지고... 빨래 건조대에 널어놓으면 쉰내 날 지경이었어요. 그래서 지금 살고 있는 집 구할 때는 반드시 문 열고 바람 통하는지 확인했어요. 맞통풍 되는 구조인지, 아니면 최소한 창문을 열었을 때 공기 흐름이 느껴지는지 직접 서 봐야 알아요.
계약할 때 특약사항 쓰는 것도 진짜 중요하고요. 대부분 부동산에서 "특약은 별 의미 없어요" 하는데, 적어도 곰팡이 있는 벽이나 누수 흔적 발견되면 임대인이 수리해준다는 조항은 꼭 넣으세요. 제 후배는 이거 안 넣었다가 장마철에 벽에서 물 새는 거 확인하고도 본인이 도배 다시 해야 했어요. 집주인이 "원래 그런 집인데 니가 확인 안 했잖아" 이런 식으로 나왔다고... 이때 진짜 화나더라고요.
마지막으로, 이건 순전히 제 경험인데, 30평생 이상 살다가 처음 자취하면 작은 평수 적응 못 할 거라고 걱정하는 분들 많거든요. 그런데 막상 살아보면 오히려 넓은 평수보다 수납이 잘 된 작은 평수가 훨씬 쾌적하더라고요. 제 첫 집은 13평이었는데 붙박이장이 방마다 잘 되어 있어서 짐 넣을 데가 충분했거든요. 두 번째 집은 거실만 8평짜리였는데 수납공간이 하나도 없어서 옷가지랑 등산 장비 널브러져서 개판이었어요. 결국 다이소에서 플라스틱 서랍장 잔뜩 사다 썼지만 미관상 영 별로였고...
여튼 글이 길어졌는데, 요약하면 직접 확인 안 하고 믿는 게 제일 위험해요. 사진이나 중개인 말만 믿지 말고 내 발로 뛰어서 보고 듣고 만져보는 게 최고라는 거. 저도 여러 번 계약 갱신하고 이사하면서 돈과 시간을 꽤 썼지만, 그 과정에서 배운 팁이에요. 도움 됐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