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마다 고기 한 덩이 삶아놓고 일주일 반찬 해결하는 사람으로서 이 주제는 진짜 오래 다뤄보고 싶었어요. 주변에서 수육 맛있게 하는 법 물어보면 십중팔구 된장 넣었냐 커피 넣었냐더라고요. 저는 그거 하나도 안 넣고 걍 돼지냄새 잡습니다. 제 기준에선 재료 더하기 전에 온도와 시간으로 해결되는 문제거든요.
잡내의 정체부터 짚어볼게요. 저도 처음에 많이 헤맸는데, 알고 보면 돼지고기 비린내는 핏물+끓는 과정에서 급격히 응고된 단백질 찌꺼기+지방 산패취의 조합이에요. 된장이나 커피는 그 냄새를 덮는 거지 없애는 게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덮지 않고 빼는' 방법으로 접근합니다.
제가 2년간 열 번 넘게 실패하고 정착시킨 방법 요약 드리자면:
- 고기는 두께 5cm 이상 앞다리살 또는 삼겹살 덩어리. 지방층이 너무 얇으면 퍽퍽해져요.
- 첫 핏물 빼기는 찬물에 30분이 아니라, 10시간 이상 냉장 숙성에 가깝게 진행. 전날 저녁에 넣고 아침에 뒤집어주는 정도로 충분.
- 물 온도가 핵심인데, 55도에서 60도 사이를 최대한 길게 유지해야 합니다.
세부 단계 풀어볼게요.
일단 고기는 사 오자마자 2% 소금물에 담가서 냉장실에 넣어둬요. 농도 맞추는 법은 물 1리터에 소금 20g, 이게 삼투압으로 핏물 빼는 가장 빠른 방법이더라고요. 핏물이 빠질 때쯤 물이 탁해지는데, 2~3시간 후에 한 번 갈아주고 다시 소금물 만들어 담가둡니다. 하루 전날 시작하시는 게 제일 좋아요.
그다음 아침에 고기 꺼내서 키친타월로 꼭 누르듯이 닦아요. 이때 물기 대충 닦으면 안 되고, 표면이 끈적하지 않을 때까지 닦아내는 게 포인트. 이 끈적한 게 열 받으면 잡내 물질이 된다고 어디 식품 공학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나네요. 확실한지는 모르겠는데 체감상 차이는 엄청났어요.
냄비에 물은 고기가 잠길 만큼만 붓고, 양파 껍질째 반개, 통마늘 5~6쪽, 통후추 10알 정도만 넣습니다. 월계수잎 있으면 넣고요. 여기서 중요한 건 다시마 같은 거 안 넣어도 된다는 점. 감칠맛은 돼지고기 자체 지방에서 충분히 나와요.
불 켤 때 강불로 시작하지 마시고 중약불에서 시작해요. 그리고 이 타이밍을 반드시 지켜주세요.
수은온도계나 탐침온도계 있으시면 물 온도를 계속 5560도 선에서 1015분 정도 유지합니다. 이 온도에서 단백질이 천천히 응고되면서 핏물 잔여물과 거품이 고기 밖으로 밀려 나와요. 온도계 없으시면, 냄비 가장자리에 작은 기포가 생기기 시작하는 순간이 딱 58도 전후더라고요. 이 상태에서 불을 가장 약하게 줄이고 뚜껑 덮고 10분 기다리면 됩니다.
그다음 중불로 올려서 70도까지 올린 뒤 다시 약불로 줄여서 40분 유지하는 게 두 번째 관문이에요. 이 과정을 건너뛰고 처음부터 팔팔 끓이면 고기 섬유가 급격히 수축하면서 안에 갇힌 핏물 냄새가 영원히 빠지지 않아요. 제가 초반에 제일 많이 실패한 지점입니다.
마지막으로 불 끄고 10분 뜸 들이고, 꺼내서 결 따라 썰어주면 완성. 이렇게 삶은 고기는 냉장고에서 하루 지나도 냄새 안 나요.
솔직히 된장커피는 저도 처음에는 신기해서 따라 해봤는데, 막상 냄새 중화에 도움 되는 건지 미각이 둔해져서 못 느끼는 건지 판단이 안 서더라고요. 거기다 된장 냄새가 고기보다 오래 가는 경우도 있고요. 작년 겨울에 된장 듬뿍 넣고 삶은 삼겹살 냉장고에 넣어뒀다가 일주일 내내 냉장고에서 된장찌개 냄새 나서 당황했어요 ㅋㅋ 그 뒤로 안 씁니다.
단점 하나 말씀드리면, 이 방법은 시간이 오래 걸려요. 핏물 빼는 시간까지 합하면 기본 14시간, 빨라야 5시간은 잡아야 해서 퇴근 후 요리하기엔 빡세요. 저는 무조건 주말 아침에 시작해서 점심에 먹거나 일주일치 삶아둡니다.
또 하나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돼지고기 자체 신선도가 바탕이 안 되면 이 방법도 소용없어요. 한 번쯤 냉동 해동한 고기는 아무리 해도 냄새 완전히 못 잡더라고요. 그럴 땐 차라리 제육볶음 하세요.
마지막으로 요리는 계량이고 과학입니다. 온도계 하나 사시면 삼겹살 수육뿐 아니라 닭가슴살 삶기나 스테이크 굽기에도 써먹을 수 있어서 저는 만 원짜리 탐침온도계 하나로 자취 인생이 바뀌었어요. 쿠팡에서 샀는데 배송비 포함 8,800원인가 그랬을 거예요. 이건 진짜 추천드려요.
혹시 다른 방식으로 잡내 잡는 분들, 특히 한방 재료 활용하거나 청주 농도 조절하시는 분들 계시면 공유 좀 부탁드려요. 저는 청주 넣었다가 오히려 단맛 올라와서 별로였거든요. 댓글로 제 방법이랑 비교해서 알려주시면 저도 실험해볼게요. 엑셀에 수육 레시피 시트 하나 더 만들어야겠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