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에 창문 열었는데 습기 냄새가 확 올라오더라구요. 그 비 특유의 흙냄새? 그거 맡자마자 5년 전 반지하 원룸에서 살던 때가 딱 떠올랐어요.
그때 같이 살던 사람이 있었거든요. 지금은 헤어진 지 한참 됐지만, 비 오는 날만 되면 꼭 생각나요. 딱히 보고 싶다거나 그런 감정은 아니고, 그냥 기억이 촉촉해지는 느낌? ㅎㅎ
반지하라 비 오면 진짜 지옥이었어요. 곰팡이는 기본이고 벽지에 물기 올라오고 빨래는 3일 내내 안 마르고... 그때 전연인이었던 분이랑 같이 살았는데, 제가 곰팡이 알레르기 있어서 재채기 엄청 했거든요. 그럴 때마다 그 사람이 약국 가서 코푸시럽 사다줬어요. 자기 비 맞으면서.
근데 재밌는 건, 그렇게 힘들었던 반지하 생활 중에 유독 비 오는 날의 기억만 자꾸 남아요. 햇볕 좋은 날 같이 공원 갔던 건 잘 기억 안 나는데, 비 맞으며 편의점 뛰어갔던 장면은 너무 생생해요. 왜 그런 걸까요? 꼭 감성에 젖게 만드는 날씨의 마법이 있는 것 같아요.
비 오는 날은 공기 자체가 다르잖아요. 소리도 그렇고, 빛도 평소보다 어둡고, 냄새도 축축하고. 오감이 동시에 자극받으니까 뇌가 그때의 감정까지 통째로 저장해둔 게 아닐까... 싶어요. 과학적 근거는 없지만 제 경험상 확실해요.
그때 그 사람이랑은 결국 헤어졌고, 저는 그 반지하에서 나와서 지금은 3층 원룸에 살아요. 제습기 돌리고 냉장고는 항상 30% 비워두고 살면서 곰팡이랑은 완전 이별했어요. 근데 오늘 같은 날엔 괜히 옛날 냄새가 나는 거 있죠. 곰팡이 냄새인지 추억인지 분간이 안 가는... 이상한 기분.
혹시 여러분도 비 오는 날이면 유독 생각나는 사람 있나요? 꼭 전연인이 아니어도, 특정 계절이나 날씨에 따라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바로 감성 마법에 걸린 거예요. 전 오늘 저녁은 그냥 냉장고 파먹기로 김치찌개나 끓이려구요. 비 오는 날엔 찌개죠, 찌개:)
다들 빗길 조심하시고, 축축한 하루여도 기분만은 뽀송하게 보내세용. 도움 되셨음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