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 있을 때 겨울이면 제설 작업이 진짜 전쟁이었어요. 눈 오는 날이면 새벽부터 나와서 생활관 앞이고 도로고 싹 밀어야 하거든요. 근데 그날 따라 눈이 장난 아니게 많이 온 거예요.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수준.
저는 당시 운전병이었는데, 눈 치우다 말고 행보관님이 "야 너는 총기함 정리하고 와" 이러시는 거예요. 아, 참고로 저희 부대는 차량에 총기함을 따로 실어서 이동했어요. 그래서 제설 하던 삽이랑 빗자루 치워놓고 총기함 있는 쪽으로 갔는데, 어휴, 거기도 눈이 허벅지까지 쌓여가지고 총기함이 안 보이는 거예요.
정신없이 눈을 퍼내면서 위치 파악하는데, 발이 미끄러지면서 그대로 옆으로 넘어졌어요. 그 바람에 들고 있던 삽이 손에서 날아갔고, 제가 넘어지면서 눈더미를 또 쓸어버리니까 총기함 절반이 그대로 눈 속에 다시 파묻혔어요. 사람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진짜.
다행히 금방 찾긴 했는데, 문제는 제가 넘어질 때 무릎으로 총기함 뚜껑을 찍었는지 잠금장치가 살짝 틀어져서 열리지도 잠기지도 않는 애매한 상태가 된 거예요. 식은땀 줄줄 나더라고요. 중대장님한테 보고할 생각에 앞이 깜깜해졌어요.
어떻게든 수리해보겠다고 공구 들고 씨름했는데, 결국 행보관님이 오셔서 "아직도 정리 안 했냐"고 한소리 들었어요. 제가 어버버 하면서 사정을 설명했더니, 행보관님 한숨 쉬면서 공구 들고 와서 같이 뚜껑 바로잡아 주셨어요. 다행히 잠금장치가 망가진 건 아니고, 눈에 살짝 얼어붙으면서 틀어진 거라 고무망치로 몇 번 두드리니까 원래대로 되더라고요.
그날 이후로 저는 눈 오는 날 총기함 근처에 가지도 않았고, 겨울 내내 행보관님 눈치만 봤어요. 밥 먹을 때도 저만 보면 혀 끌끌 차셨던 거 아직도 기억나요. 지금 생각하면 웃긴데, 그때는 진짜 군 생활 끝나는 줄 알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