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다시피 저는 베란다에서 방울토마토랑 깻잎 같은 먹을 거 위주로 키우는 쪽이라, 식물에 이름 붙여서 키우는 감성을 잘 이해 못 하는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얼마 전에 큰애가 "엄마는 식물들한테 정이 너무 없어" 하면서, 자기 방에서 키우는 몬스테라 보고 "얘 이름 몽이야" 하는 거예요. 그 말 듣고 보니까, 진짜 키우는 사람마다 식물 대하는 태도가 확실히 다르구나 싶더라고요.
저는 화초들은 대부분 "얘" "쟤" 이렇게 부르면서 키우는 편입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식물들한테 이름을 붙이면 더 정이 가고, 죽으면 더 마음 아플까 봐 일부러 안 붙이는 것도 있어요. 몇 해 전에 달리아를 샀는데, 노지에 내다 심어놓고도 3일 만에 녹아내렸거든요. 그때도 "달리아꽃" 이라고만 불렀지 따로 애칭을 안 붙였는데도 꽤 마음이 쓰렸거든요. 이름까지 붙였으면 얼마나 더 속상했을까 싶더라고요.
대신 저는 식물 하나하나 상태를 기록하는 쪽으로 애정을 표현합니다. 냉장고 옆에 붙여놓은 화이트보드에 물 준 날짜, 분갈이한 날짜, 웃자란 순 같은 걸 적어놔요. 아시다시피 식물이 갑자기 축 처지는 건 90%는 물 문제거든요. 물을 너무 많이 줘서 뿌리가 썩거나, 너무 안 줘서 잎이 마르거나. 이름을 부르고 예뻐해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저는 그 식물이 원하는 환경을 알아채는 게 진짜 애정이라고 생각하는 쪽이라서요.
그런데 며칠 전에 아파트 단지에서 같이 산책하는 분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자기는 다육이들 각자 이름을 다 불러주면서 물 주고, "○○아 잘 자고 있니?" 하고 말도 건다고. 그분 말씀 들어보니까 나름대로 장점이 있구나 싶기도 했어요. 아시다시피 식물들도 소리에 반응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잖아요. 물론 그게 진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키우는 사람이 더 관심을 갖게 되는 효과는 확실한 거 같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은 제 나름대로 타협점을 찾았어요. 베란다에 있는 허브류는 먹을 목적이니까 그냥 "로즈마리" "바질" 종 이름으로 부르고요. 거실에 두는 관상용인 스파티필름은 아주 가끔 "필름이" 라고 부를 때도 있어요, 큰애가 자꾸 이름 좀 지어주라고 해서요. 근데 이게 웃긴 게, 한 번 이름을 붙이고 나니까 확실히 물 체크할 때마다 "필름이 오늘 잎이 축 처졌네" 하면서 좀 더 살피게 되긴 하더라고요. 마치 가족 구성원 하나가 더 생긴 기분? 근데 그게 싫지만은 않아서 신기해요.
결론은, 저처럼 식물에 정 붙이는 게 두려워서 이름 안 붙이는 사람도 있고, 적극적으로 가족처럼 이름 붙여서 키우는 사람도 있더라는 거예요. 둘 다 나름의 이유가 있고, 뭐가 더 낫다고 단정할 건 못 되는 거 같습니다. 다만 이름을 붙이든 안 붙이든, 그 식물이 지금 뭘 필요로 하는지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게 제일 중요하겠죠. 저도 이제 "필름이" 덕분에 물주는 주기가 좀 더 규칙적이 됐으니, 이 정도면 서로 윈윈 아닌가 싶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