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밤이었어요. 딸아이는 9시 넘자마자 코 골며 잠들었고, 남편은 출장이라 집에 없었고. 저녁 설거지까지 마치고 나니 거실에 저 혼자 덩그러니 남았더라고요.
원래라면 밀린 인스타 릴스 보거나 다음 주 업무 메일 정리하거나 그랬을 거예요. 근데 그날따라 괜히 소파에 앉아서 TV 리모컨을 괜히 만지작거리게 되더라고요. 넷플릭스랑 웨이브 왔다갔다 하다가 예전에 보려고 찜만 해뒀던 영화 하나를 재생했어요. 프렌치 뉴 웨이브 계열도 아니고 그냥 코미디였는데, 제목조차 기억 안 나는 게 좀 웃기네요.
그런데 영화 자체보다 그 시간이 묘하게 좋았어요. 평소에 아이 재우고 나면 거의 탈진 상태라 소파에 눕자마자 저도 같이 잠들기 바빴거든요. 이날은 달랐어요. 아이 재우기 전에 미리 차려둔 밀키트 치킨 샐러드 냉장고에서 꺼내서 소파 옆 좌식 테이블에 펼쳐뒀고, 그릇 대신 반찬 통째로 찍어 먹으면서 봤어요. 아무도 잔소리 안 하는 게 이렇게 편한 일인지 오랜만에 느꼈습니다.
영화 중간중간에 제 팔 베개 삼아서 자는 딸아이 얼굴도 한 번씩 들여다보고, 창밖에 아파트 불 꺼지는 거 구경하면서 보니까 시간이 더디게 가는 느낌이었어요. 사실 같은 영화를 주말 낮에 봤으면 그냥 대충 넘겼을 법한 장면에서도 괜히 감정이 더 들어가더라고요. 엔딩 크레딧 올라가는데 뭔가 모를 뭉클함에 소파에 한참 앉아 있었어요.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서 커피 내리는데도 그 기분이 그대로 남아 있더라고요. 주말 시작을 이런 식으로 열어서 그런지 토요일 하루 종일 마음이 좀 넉넉했어요.
주말 저녁에 영화 보는 게 특별한 이유라면, 아마 '내가 나를 위해 쓰는 시간'이라는 점 때문인 것 같아요. 평일 야근하고 와서 보는 건 체력 회복용에 가깝고, 아이랑 같이 보는 건 교육이나 공유 목적이 있잖아요. 근데 주말 밤 혼자 영화 보는 건 오롯이 나만의 취향에 집중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순간이에요. 그냥 아무 영화나 틀어놓고, 아무 생각 없이 장면 따라가면서 웃거나 울거나. 그 시간이 저한테는 일종의 미니 여행 같은 거더라고요.
- 그래서 요즘은 금요일 밤마다 '혼자 무비 나이트'를 일부러 만들려고 해요. 남편이 집에 있을 땐 양해를 구하고 거실 점거합니다. 대신 토요일 아침에 남편이 좋아하는 해시브라운이랑 달걀 프라이 정성껏 해주는 걸로 빚을 갚고요.
혹시 비슷한 루틴 가지신 분 계세요? 저만 이 시간이 이렇게까지 좋은 건지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