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애들 챙기랴, 반찬 준비하랴 몸이 천근만근일 때 가만히 눈 감고 듣는 노래 몇 곡 있어요. 저는 주로 저녁 설거지 끝나고 아무도 없는 주방에서, 불 다 끄고 인덕션 위에 작은 캔들 하나 켜둔 채로 이어폰 꽂아요. 볼륨은 내 목소리보다 살짝 작게. 클래식 기타나 잔잔한 피아노 독주 위주로 듣는데, 요즘 빠진 건 호로비츠가 연주한 슈만 '트로이메라이'예요. 집에 블루투스 스피커도 있지만 이 시간만큼은 좀 싸구려라도 유선 이어폰이 더 좋더라고요, 선이 있으니까 오히려 나만의 공간에 갇힌 느낌이고요. 혹시 다른 분들은 어떤 조건에서 무슨 곡 들으시는지 궁금하네요, 저는 가사 있는 노래는 머리가 따라 읽어서 더 피곤해지더라고요 ㅎㅎ.
피곤할 때 귀가 녹는 노래 뭐 들으세요?
2026-06-09 14:32:40.183Z
댓글 2
- 나무늘보2026-06-10 05:39:01.642Z
저는 좀 다른 케이스긴 한데, 피곤할 땐 오히려 가사 있는 음악을 틀어요. 악기 소리만 듣다 보면 생각이 더 많아지더군요. 확인해 보니 플리 중에 제일 많이 재생한 게 김사월 - '잠' 이었어요. 목소리가 나른해서 억지로 따라 부르다 보면 몸에 힘이 빠지는 느낌이 들더군요 ㅎㅎ. 그 다음은 아이유 - '밤편지' 정도.
2 - 김과장2026-06-12 10:28:07.574Z
↳ 나무늘보에게
나무늘보님 말씀, 충분히 이해는 갑니다. 가사가 주는 마음의 마사지 같은 느낌, 저도 모르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제 경험으로는 그 '억지로 따라 부르다 보면 힘이 빠지는' 그 지점이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마음을 달래려다 의도치 않게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경우를 몇 번 겪었거든요. 김사월님의 '잠', 저도 들어봤습니다. 확실히 나른하고 예쁜 곡입니다. 그런데 그 나른함이 저에겐 독이었습니다. 피곤한 상태에서 그런 곡을 들으면 몸에 힘이 풀리다 못해 뇌까지 녹아내리는 기분이 들더군요. 결국 아무 생각도 하기 싫어지고, 해야 할 일은 산더미인데 무기력만 깊어지는 겁니다. 마치 휴일 오후 맥주 한 캔 했는데 그대로 밤까지 뻗어버리는 느낌이랄까요. 그 다음날 후폭풍이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피곤할수록 오히려 구조가 명확하고 감정선이 복잡하지 않은 악기 연주곡을 고릅니다. 생각이 많아지신다고 하셨는데, 저는 그게 악기 소리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장르 선택의 문제라고 봅니다. 예를 들어 현대 클래식 중에서도 무조성 음악이나 긴장감이 심한 곡을 들으면 당연히 머리가 복잡해지죠. 제가 추천드리고 싶은 건, 마치 공장 자동화 라인처럼 딱딱 맞아떨어지는 명료한 구조의 곡들입니다. 제가 주로 듣는 건 바흐의 건반 협주곡 중에서 느린 악장들입니다. 특히 d단조 협주곡 BWV 1052의 2악장 같은 경우는, 엄격한 규칙 안에서 움직이는 멜로디가 마음을 잔잔하게 정돈해줍니다.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상태를 '점검'할 수 있게 해준다고나 할까요. 마치 출고 전 차량을 공진단에 올려놓고 떨림 수치를 계측하는 느낌과 비슷합니다. 물론 이건 지극히 제 개인적인 취향이고, 나무늘보님 방법이 틀렸다는 얘기는 절대 아닙니다. 사람마다 피로를 푸는 회로가 다른 거니까요. 하지만 혹시라도 가사 있는 음악을 듣고 난 뒤 오히려 더 피곤해진 적이 있으시다면, 한 번쯤은 감정의 개입을 최대한 배제한, 일종의 '백색소음 같은 클래식'도 시도해보시길 권해봅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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