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다니면서 육아까지 하다 보면 몸이 피곤한 것보다 머릿속이 과부하 걸리는 게 더 힘들더라고요. 퇴근하고 애 씻기고 책 읽어주고 내일 준비물 챙기고 나면, 잠들기 전 30분이 유일한 자유 시간인데 그때조차 유튜브 알고리즘에 휘둘리면 시간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래서 일부러 플레이리스트를 몇 개 정해두고 상황별로 나눠서 들어요.
저는 피곤할수록 템포가 빠르거나 가사가 귀에 꽂히는 곡은 못 듣겠더라고요. 신경이 더 곤두서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제일 많이 찾는 건 영화 사운드트랙 중에서도 대사 없이 피아노나 현악기 위주로 편곡된 앨범이에요. 예를 들면 '인터스텔라' 메인 테마 같은 곡은 알고리즘에 너무 많이 노출돼서 식상하긴 한데, 그래도 조용한 밤에 저음 스트링이 깔리면 뇌가 좀 진정되는 느낌이 들어요.
근데 진짜 중요했던 건 음원 자체보다 재생 기기랑 파일 음질이더라고요. 예전에는 그냥 스마트폰 스피커로 유튜브에서 아무 플레이리스트나 틀었는데, 광고 터지는 건 둘째 치고 압축 음원 특유의 금속성 잡음이 오래 들으면 오히려 짜증 나더라고요. 작년 블프 때 고민하다가 소니 헤드폰 WH-1000XM5 샀는데, 이게 노이즈 캔슬링도 좋지만 무손실 음원 파일로 들을 때 저음역 분리감이 확실히 달라서 그 돈이 아깝지 않았어요. 물론 이 가격이면 애 책장 하나 더 사는 게 맞는데... 제 멘탈을 위한 투자라고 합리화 중이고요.
그리고 의외로 카페 소음 같은 백색소음은 저랑 안 맞았어요. 초반에는 집중 잘 되는 것 같다가도 30분 지나면 은은한 잡음이 거슬려서 그냥 음악으로 돌아오게 되더라고요. 대신 비 오는 소리는 괜찮은데, 이것도 유튜브에 올라온 인공 제작 빗소리는 루프가 짧은지 5분쯤 지나면 패턴이 반복돼서 오히려 그걸 기다리는 이상한 습관이 생겼어요. 이건 좀 실패한 사례고요.
요즘에는 주로 밤에 불 끄고 누워서 다음 세 곡을 반복 재생해요. 다들 아는 곡일 텐데 오히려 익숙해서 편하더라고요.
- 요하나 요한손, 'The Sun' — 앨범 'Orphée' 수록곡인데 첼로 소리가 마치 진동처럼 울려서 이어폰보다 헤드폰으로 들어야 제맛이었어요. 초반 2분은 멜로디가 거의 없어서 이걸 음악이라고 해야 하나 싶다가도, 중반부 넘어가면서 첼로가 고음으로 올라갈 때 숨이 트이는 느낌이에요.
- 에도 비에트, 'Silent Stories' — 네덜란드 피아니스트인데 국내에 거의 안 알려졌더라고요. 이 분 음악은 화음 전환이 갑작스럽지 않아서 욕조에 몸 담그는 것처럼 잠겨 들어요. 대신 졸릴 때 들으면 진짜 잠들어요. 운전 중엔 절대 틀지 마세요.
- 적재, '별 보러 가자' 기타 편곡 버전 — 본인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라이브인데, 원곡보다 템포를 10%쯤 늦춰서 연주하셨더라고요. 중간에 손가락이 줄 긁는 소리도 그대로 들어가 있어서 디지털 음원보다 따뜻한 질감이 나요. 단점은 유튜브라 광고 나오고요.
장르로 따지면 뉴에이지나 미니멀 클래식 위주인데, 이쪽은 고음질로 안 들으면 그냥 잡음 덩어리가 되기 쉬워서 스트리밍 앱에서도 음질 최고 옵션으로 설정해놨어요. 멜론은 hi-fi 이상, 유튜브 뮤직은 기본이 AAC라서 좀 답답하고... 이건 개월 수 대비 요금이 아까워서 작년에 벅스로 갈아탔어요. FLO는 초등학교 때 쓰던 mp3 느낌의 EQ 프리셋이 많아서 나쁘지 않았는데, 제 귀에는 저음이 부풀려져 들려서 오래 못 쓰겠더라고요.
혹시 비슷하게 조용한데도 '멜로디 라인이 확실한' 곡 찾으시는 분들, 저만의 기준 하나 알려드릴게요. 인트로가 피아노 단음으로 시작하는 곡은 대부분 후반부에도 급작스러운 전조나 드럼 개입이 없더라고요. 반면 현악기 트레몰로로 시작하는 곡은 중간에 영화 같은 클라이맥스 터지는 경우가 많아서 릴렉스 용도로는 피해요. 이건 제 경험이라 일반화는 못 하겠고요.
사실 이렇게 장비 타령하고 장르 분석하는 제 모습이 좀 웃기긴 해요. 예전에는 '힐링 음악' 이라는 제목만 보고 아무 플레이리스트나 저장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냥 배경음악이었지 제 마음을 진짜 진정시켜준 건 몇 개 안 되더라고요. 결국은 내 귀에 진짜 맞는 소리 찾기가 휴식의 첫 단계였어요. 여러분은 피곤할 때 어떤 곡 들으세요? 가사 있는 곡이 더 마음 편하신 분들도 계실까요? 저는 가사가 머릿속에 맴돌아서 못 듣겠던데, 그런 점도 궁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