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퇴근길에 갑자기 김치찌개가 땡기는 거예요. 그것도 뭔가 엄마가 끓여준 그런 찌개요. 자취 1년 넘으면서 나름 레시피 정리한다고 이것저것 따라 해봤는데, 백종원 레시피는 왠지 내 입맛엔 좀 싱겁고 인터넷에서 본 다른 레시피들은 뭔가 2% 부족한 느낌이 계속 있었거든요.
그러다 문득 '아, 엄마한테 물어볼 걸 왜 여태 안 물어봤지' 싶더라고요. 바로 전화 걸었죠. 저녁 7시 넘어서 전화하니까 밥 먹었냐고, 또 라면 먹는 거 아니냐고 잔소리부터 한 사발 하시길래 "김치찌개가 먹고 싶어서요, 레시피 좀" 했더니 한숨을 푹 쉬시더라고요. "그냥 대충 하는 건데 레시피가 어딨어" 이러시길래 제가 "어머니, 저는 그 대충이 안 돼서 그래요. 정확히 알려주세요" 했죠.
엄마 표 김치찌개 핵심은 딱 세 가지였어요.
- 묵은지. 그것도 신맛이 좀 돌아야 한다고. 냉장고에 2주 넘게 묵힌 거.
- 돼지고기는 앞다리살. 삼겹살 기름은 너무 많이 나와서 국물이 텁텁해진대요.
- 물은 김치가 살짝 잠길 정도만. 이것만 지키면 간은 그때그때 봐도 된대요.
여기서 제 성격 나오죠. "살짝 잠길 정도가 어느 정도예요? 몇 ml예요?" 물어봤더니 전화 너머에서 한숨 소리만 들리더라는... ㅋㅋ 결국 "니가 먹을 만큼만 넣어!" 이 한마디로 정리되긴 했어요.
어제 바로 묵은지 꺼내서 해봤는데 진짜 신기하게도 엄마가 해준 그 맛이 나는 거예요. 국물이 걸쭉한데 느끼하지 않고, 김치가 푹 익으면서 나오는 그 깊은 맛? 거기에 돼지고기에서 우러난 육수까지. 집에 두부가 없어서 못 넣었는데도 밥 한 공기 순삭이더라고요.
근데 막상 먹으면서 좀 울컥하긴 했어요. 이거 원래 엄마가 매주 주말에 큰 통에 가득 끓여서 나 자취방 올 때마다 싸줬던 반찬이었거든요. 작년에 독립하고 처음 몇 달은 그 반찬들 먹으면서 살았는데, 점점 떨어지고 이제는 내가 직접 해 먹어야 하는 입장이 되니까... 그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먹었던 것들이 사실은 엄마 시간을 꽤 많이 썼겠구나 싶더라고요.
앞다리살 사다가 한 번 더 해볼까 해요. 이번엔 두부도 꼭 넣고. 두부 넣는 타이밍이 언제냐고 또 전화했더니 "그것도 니 마음대로야" 하시면서 웃으시더라고요. 아직도 대충의 경지에는 못 이르렀습니다, 저는.
요약 드리자면, 자취인들 김치찌개 맛있게 끓이는 법 딱 한 가지예요: 엄마한테 전화하기. 레시피는 덤이고, 뭔가 그동안 연락 못 드린 거 미안한 마음까지 같이 들어가서 그런지 진짜로 더 맛있어지는 거 같아요. 오늘 퇴근하고 또 해 먹을 겁니다. 다들 주말에 한 번 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