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저녁이에요. 딸아이 재우고 거실 불 다 끄고, 냉장고에서 맥주 한 캔 꺼내서 소파에 앉는 그 순간. 사실 한 주 내내 이 시간만 기다렸어요.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퇴근하고 학원 픽업에 숙제 봐주고 내일 입을 옷 챙겨주고 나면 정신없이 하루가 끝나거든요. 씻고 침대에 눕는 순간까지 내 시간이라고 느껴본 적이 별로 없어요.
그런데 금요일 밤 열한 시쯤 되면 상황이 달라져요. 남편은 일찍 자는 편이라 거실이 완전히 제 공간이 되고, 리모컨도 저 혼자 독점이에요. 이 시간에 영화 한 편 고르는 그 5분에서 10분 사이가 오히려 제일 즐겁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오늘은 무슨 장르 볼까, 아니면 옛날에 봤던 거 다시 볼까 고민하다가 결국 몇 년 전에 개봉한 프랑스 영화를 골랐어요. 제목은 뭐라고 말하기 좀 그런데, 여주인공이 혼자 조용히 자기 삶을 정리해가는 내용이에요. 액션도 없고 대사도 많지 않은데, 화면 색감이 참 예뻐서 한 번 보고 두고두고 생각났던 작품이에요.
재미있는 건, 같은 영화도 같이 볼 때랑 혼자 볼 때 느낌이 완전히 달라요. 같이 보면 중간에 누가 말 걸거나 팝콘 나누느라 맥이 끊기는데, 혼자 보면 캐릭터 표정 하나까지 놓치지 않게 돼요. 특히 조용한 장면에서 제 호흡 소리가 들릴 때면, 내가 이 이야기 속으로 완전히 빠져들었다는 게 실감 나더라고요. 누군가 옆에서 "저 배우 요즘 뭐하나?" 이런 말 안 해줘도 괜찮고, 중간에 멈춰서 화장실 갔다 와도 아무도 뭐라고 안 하고.
사실 예전에는 혼자 있는 시간이 아깝다고 느꼈어요. 뭔가 생산적인 걸 해야 할 것 같고, 영화 보는 거야말로 시간 버리는 행동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직장 복귀하고 나서 깨달은 게, 내가 온전히 '나'로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이 있어야 남편한테도 덜 짜증 내고 딸한테도 더 친절해지더라고요. 일종의 감정 재충전 같은 거예요. 영화 속 인물이 웃고 울고 화내는 모습 보면서 제 감정도 같이 한 번 정리가 되는 기분이 들어요. 눈에 안 보인다고 없는 게 아니더라고요, 엄마나 직장인의 스트레스라는 게.
물론 혼자 영화 본다고 해서 매번 대단한 깨달음을 얻는 건 아니에요. 지난주에는 액션 영화 틀어놓고 중간에 졸았어요. 그것도 나름대로 좋았어요. 몸이 피곤한 상태에서는 그냥 화면 앞에서 멍 때리는 것 자체가 휴식이니까.
오늘은 영화 끝나고 엔딩 크레딧까지 다 봤어요. 음악이 참 좋아서 그냥 계속 듣고 싶더라고요. 내일은 아침 여덟 시부터 딸 영어학원 있는데, 그런 생각도 잠시 잊고 소파에 누워서 천장만 바라봤어요. 뭔가 특별한 일은 없었지만, 이 특별하지 않은 시간이 특별해요. 다들 주말 저녁에 뭐 하시나요, 하고 묻고 싶네요.